2025: 변화, 도전,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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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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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데 올해 상반기는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들 중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 정신적으로는 분명히 고3 때보다 힘들었다.

처음으로 공황장애가 어떤 기분인지 상상이 되었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습관적으로 최악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혼자 심각해지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해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지난 학부에서의 시간들을 평가받아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네가 나 이 대학원 합격하게 해주든가'

'네가 내 군복무 대신 해주든가'

'네가 이 실험 어디가 문제인지 찾아주든가'

매우 다행히도, 거의 모든 것이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갔고 도리어 친구들에 대한 감사함을 크게 되새기는 한 해였다.

해외

한국을 나가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평생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계엄 이후의 정국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곳에서 살기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게임이론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 말씀처럼 그냥 어디서든 살 수 있게 대비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내가 국가로부터 이것저것 수혜를 봤으니, 나도 이 나라에 기여를 더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도 공존한다.

이런 생각들이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생각해 볼수록 미래에 항상 한국에서만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해외에서 일해보는 경험은 조국(정치인 아님)에 대한 선호와 별개로 좋은 경험일테니 도전하고싶다.

실감

The second guy

Sasquatch music festival 2009 - Guy starts dance party 라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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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감 초기에 어떻게 주요 멤버가 될 수 있었는지 돌아보면,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실감이 처음 생겨날 때 내가 저런 'second guy'였기 때문이었지 싶다.

우연은 말그대로 우연히 찾아온다.

하지만 그 우연을 잡아내는 역량은 능력의 문제라고 믿게 되었다.

매출 중심 사고

다음은 7월 12일에 팀원들에게 공유했던 글의 일부이다:

유저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마음에서 함께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서비스를 이제는 돈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거나 초심을 잃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애초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매일 매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한 이후로 이 서비스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작년부터 그랬듯 나의 역할이 매출의 변화에 매달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부담이 되면서도 만족스럽다. 매출액의 측면에서는 내가 잘하는 만큼 더 많은, 내가 못하는 만큼 더 적은 매출액이 매달 발생하고, 연말에 가져가는 정산액도 그에 비례한다. 즉, 내가 잘한 만큼 가져간다. 체육 시간에 일부 학생들의 정신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30명의 학생들에게 30분간 운동장 구보를 시키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바라왔던, ‘내가 잘하는 만큼만 대우받는’ 최적의 환경이 이곳에 있다. 바라던 대로 내가 하는 만큼 벌고 잃는 것이기 때문에, 매출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실감의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진지해진다.

게임은 적당히 잘하면 그저 즐겁지만, 이 일은 적당히 잘하면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다. 이제는 진지하게 게임과 실감, 나아가 삶의 차이가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특정 시기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할 때에는 엄청난 짜릿함을 느낀다. 연말 사용자 총조사 답변을 보며 느끼던 희열을 매달 2~3번씩 경험하는 기분이다. 혼자 새로운 가격 프로모션을 구상해서 세상에 내던지고 시작을 기다리는 기분은, 유저가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앱 서비스를 스토어에 올리는 개발자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텝업

올해는 확실히 나에게 기억에 남을 한 해였다.

광고대행사에서 메일을 받아보기 시작했고, 팀 내에서 확실히 내가 주도해야 하는 영역들을 넓혔고

특히 인앱 상품 관리를 훨씬 계획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내가 직접 써야 해서 부담되는 일들도 있었고, 안그래도 대학원 입시로 바쁘긴 했지만

어차피 나중에 하더라도 두려울 거고 나는 항상 바쁠텐데, 지금 두렵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못하겠다 싶어서 어떻게든 최대한 해냈다.

나아가서, 지금까지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지만

이제는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해서 현재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된다.

비수기 MAU를 10만 단위까지 올리려면 무엇을 더 해야 하지?

광고 상품을 얼마로 책정하려면 노출량이 얼마나 돼야 하지?

내가 한 달에 얼마 가져가고 싶다면 매출이 얼마나 나와야 하지? 등등

이제부터는 정말 다르다.

조금씩 알 것 같다

처음 팀원 간의 계약서라는 것을 쓰던 때에는 표현 하나하나가 다 힘들었다.

1조는 '목적' 이어야 할지 '계약의 목적' 이어야 할지

계약서에 수식을 넣을 때는 in-line으로 넣어야 하는지, 별도의 행으로 넣어야 하는지

이제는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고 팀의 운영에도 훨씬 많은 체계가 생겼는데

대학교에 경영학부로 입학했던 그때보다도, 경영학에는 왜 그런 분야들이 있는지에 대해 이제는 더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보상 체계를 포함해 인사관리가 왜 하나의 분야 및 부서로 존재하는지

왜 조직이 클수록 말단 구성원이 시스템을 많이 건드리지 못하는지

왜 요건 형식 절차를 중요시하게 되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전환점

실감을 시작할 때 무언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원대한 목표가 없었기에 다들 지금까지 얇고 길게 해올 수 있었나보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같은 창대한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함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3년 넘게 달려오다가, 올해 여름부터 돈벌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작년에는 '올해도 즐거웠고, 내년도 기대된다.' 라고 정리했다.

올해는 우리가 자랑스러웠다.

조건부 받아들이기

중학교 도덕 시간에 접했던 에픽테토스 관련 이야기가 감명깊어서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았다.

나쁜 일이 생겨도 그냥 빨리 받아들이고 다음 무브로 넘어가자는 것이 감명깊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케이스를 나눠서 좀 더 정교하게 생각하게 된다.

마치 systematic risk는 어떻게 할 수 없어도, idiosyncratic risk는 해소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살면서 마주치는 위험 요소들을 둘로 나눠 단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은 무식하면 남이 고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팀원이 실수를 했다면 그건 인간이라면 가끔 하는 실수 또는 천재지변, 즉 systematic risk이니 감내한다.

하지만 어디선가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피해야 하는 idiosyncratic risk가 아닐지 의심하고 경계한다.

힘들었다

올해에 가장 중요했던 일들은 아무래도 두 개의 연구 주제에 집중했던 것이고

결론적으로 보면 더욱 self-motivative해지는 과정이었던 것 같지만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돌아보면, 연구 주제 자체가 고통스러웠다기보다는 (그랬다면 아무 성과도 못냈을 듯...) 부차적인 이유들로 힘들었다.

2월에는 내가 연구의 힘든 과정까지도 즐길 수 있는 그릇은 못되는 건가 의심도 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걱정은 없다.

결국은 이것도 'If you don't quit, you can't fail' 인가보다.

그리고 다행히 이 연구 주제들에 대해서는, 나는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나도 할 수 있다'로 끝난 사례를 더 쌓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원 과정에는 어떤 힘든 일들이 있을지, 어떤 자잘한 스트레스들이 있을지, 이때보다 더 힘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대학원 입시를 통해 걱정하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으니, 미래의 나는 새롭게 닥친 여러 힘든 일들을 그 자체로 좀 더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불안장애

대학생이 된 후로는 줄곧 일상이 항상 빡빡했고, 예민해질 일이 많았다.

4년 내내 수업 하나하나 출석 하나하나 신경쓰고, 과제와 시험 그 어디에도 아픈 손가락이 생기지 않게 모든 것에 집착했고

슬랙은 가능한 항상 보려고 했고, 남는 시간이 생길마다 어떤 생산적인 일로 채울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주말만 되면 하는 생각이 '오늘은 뭘 하면서 생산적으로 보낼까?' 였고, 항상 집 밖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부나 일을 했다.

항상 무언가에 몰입해있는 것, 열정을 불태우는 경험은 좋았지만 동시에 항상 여러 강박들과 함께 예민한 상태였는데

그렇다보니 '모든 일에 대해 항상 최악의 경우만 생각한다' 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런 강박적인 습관들 덕분에 이룬 것들도 많지만, 이제는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었다.

결국에는 나 또한 생산이 아닌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학부 때 열심히 굴러서 이런 고민을 할 정도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지금의 모든 상황이 다행스럽다.

The 4th chapter

올해에 카이스트 대학원에 합격하면 네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올해를 거치고 나니, 성장이 아니라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연구와 입시 및 기타 여러 일들로 내 스스로가 엄청나게 냉철해지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시간이었고,

지나고 나니 마음에 굳은살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동시에, 남들에게 베풀며 살아야 하는 것과 별개로 내가 호구가 되는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변화, 도전, 우연.

이 모든 여정에는 정말 결정적인 우연이 많았다.

남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건 정말 운의 영역이구나' 싶었던 그런 일들이 나에게도 몇 가지 있었다.

  • 내가 입학하고 딱 한 번 전과를 도전할 수 있을 때, 데이터사이언스학부에서 처음으로 전과 모집을 시작했다.
  • 전공을 바꾼 후 전과를 빌미로 친해진 고등학교 동문이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말 한 마디 안해봤던 친구가 마침 경제 부전공을 시작하며 계량경제 수업을 여름 학기에 듣는다 했고, 나도 경제 다중전공을 시작하려던 차에 마침 계량경제는 이름을 들어는 본 과목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를 따라 수강했다. 추후 이 분야를 다루시는 교수님의 RA를 하게 되었고, 추천서도 부탁드리게 되었다.
  • 에브리타임에서 알게된 분께 전과에 대해 도움을 드리려고 시험기간 한창일 때 만났는데, 오히려 내가 경영대 프로젝트 학기 수업의 존재를 알게 됐다.
  • 그곳에서 마침 내가 기여를 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계신 분을 만났고 저널에 투고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심지어 그곳에서 만난 분은 내가 지원하고 싶었던 카이스트 경영공학부에 합격하신 상태였다.

될 일이라면 이상할 정도로 착착 잘 맞아 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나보다.

고3 때 오르비에서 본 오르비 정신이라는 글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 글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3년 전 고등학교 선배에게 '나는 내가 남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부터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났다.

행운을 바라기에 앞서 베풀고 살아야 한다.

기념일보다 일상

항상 큰 성취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하루가 모였을 때 겨우겨우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실감은 초창기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디테일들에 우리만 집착하던 시간이 있었고

BM은 혼자 정신병의 경계를 오가며 실험 결과를 낸 시간들이 숱하게 있었고

GRF는 방에 틀어박혀서 사이킷의 소스코드를 읽고, 친구들에게 '그래서 nogil이 대체 뭐냐'고 묻던 시간이 있었다.

특별한 장소에서 평소와 다른 일들을 하며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하루보다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하루. 그런 일상들을 무너지지 않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중요함을 크게 느끼는 한 해였다.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우연, 그것을 잡아채기 위한 나의 능력과 열정,

그리고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질 때까지 하루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지내는 균형잡힌 삶과 끈기.

오랜만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 공부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


ψθ(yi)=τ1{yiθ<0}\begin{aligned} \psi_{\theta}(y_i) = \tau - \mathbf{1}\{ y_i - \theta < 0 \} \end{aligned} dH(X,Y):=max{supxXinfyYd(x,y), supyYinfxXd(x,y)}\begin{aligned} \footnotesize d_H(X, Y) : = max \left\{ \sup_{x \in X} \inf_{y \in Y} d(x, y), \ \sup_{y \in Y} \inf_{x \in X} d(x, y) \right\} \end{aligned} Y=X/\begin{aligned} Y = X / \sim \end{aligned}